스펙트럼 부산 나우 2-4

스펙트럼 부산 - 나우 2

  • 1<구름이하는말>(2024), 장태구

스펙트럼 부산 - 나우 3

  • 1<산산조각 난 해>(2024), 오민욱

스펙트럼 부산 - 나우 4

  • 1<뭐 그런 거지>(2024), 이하람

스펙트럼 부산 - 나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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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하는말 Spring Equinox

극영화|컬러|MOV|81분|2024

*2022 부산 인터시티 레지던시 영화제작사업

  • 1시놉시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 '현수와선희'의 공연을 통해 만나게 된다. 서로에게 묘한 영향을 받게 되면서 시는 노래가 되고 그림이 된다. 
  • 1프로그램 노트
    도시 장송곡으로서의 <구름이하는말>은 손에 한 줌의 희망을 쥐고 세상의 거대한 죽음을 수용하는 영화적 자세를 보인다. 원체 근대 서구의 영화란 산업혁명으로 급변한 도시의 빠른 속도감에 자신의 속도를 맞출 수 있는 동시대적 매체였다. 이후 너무 빨라진 세상의 속도에 반기를 들며 나타난 슬로우 시네마는 영화를 현실에 거스르는 대안적 매체로 상정했다. 그리고 2024년에 만들어진 <구름이하는말>은 영화의 속도를 당장 우리가 느끼는(느끼고자 하는) 현실의 속도에 맞춘다. 그 프레임 속엔 점차 죽어가는 작금 대한민국 부산이란 도시의 풍광이 있다. 여기엔 카페이자 문화공간을 겸하는 한 공간이 있고, 그곳에 젊은 가수나 사진가 등 여러 청년이 모인다. 이들은 거창하고 열혈 넘치는 목표로 움직이기보단 하루하루의 먹고 살기와 적절한 규모의 창작 지속을 꿈꾸며 살고 있다. 여하간 사람이란 천천히 죽어가기 마련이고, 사람이 모여 만든 도시 역시 그 종말을 향해 사라져가는 생애 주기를 지닌다. 다만 그 속도감만큼은 영화가 조절할 수 있다.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느리지 않게, 근대 서구의 산만한 영화도 아니고 21세기 근처의 슬로우 시네마도 아닌 ‘지금의 우리’가 주도하는 속도에 맞추어 서로가 손을 잡고 솔직하게 나아가는 이 영화의 태도는 미덥기 그지없다.(이우빈)

<모아쓴일기>(2019)
<어디에도 없는 시간>(2021)
<구름이하는말>(2024)

스펙트럼 부산 - 나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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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조각 난 해

Letters from the Shattered Years

다큐멘터리|컬러|DCP|90분|2024

  • 1시놉시스
    밀봉된 과거를 열어 미래로 향하는 시간을 잠시나마 붙잡아두며
  • 1프로그램 노트

2023년 부산시립미술관 전시 작품 <마모>로부터 확장된 <산산조각 난 해>에 흐르는 이미지들은 오민욱의 일상과 사건, 영화, 혹은 영화가 되지 못한 잉여들의 아카이브인 것 같다. <해협>(2019), <유령의 해>(2022)로 이르는 동안의 시간 위로, <해협> 이후 함께 <새로운 해>를 만들기로 했던 샤오 카이츠의 목소리가 편지를 낭독한다. 오민욱의 결혼을 축하하는 편지, 그에 대한 답장, 그리고 오민욱이 갓 태어난 조카에게 쓴 편지. 사진과 영상은 때로는 그 구분이 무색해 보일 만큼 느리게 움직인다. 뒤로, 혹은 앞으로. 맥락을 알 수 없거나, 거칠거나, 의도적으로 흐리게 처리해 형상을 알아보기 어렵거나, 단속적으로 밀리는 느낌을 주는 변형된 이미지들은 그 자체로 산산조각처럼 보이고, 기억과 의식에서 꺼내온 편린처럼 명료한 맥락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만들어지지 않은 영화를 떠올리며 제목을 '산산조각 난 (새로운) 해'로 읽고, 애상을 느끼면서도 그것이 좌절, 고통, 슬픔 같은 것에 침잠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건 영화가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했기 때문인 것 같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 정호승의 시다.(김지연)

<상> (2012)
<재> (2013)
<범전> (2015)
<적막의 경관> (2015)
<해협> (2019)
<유령의 해> (2022)

스펙트럼 부산 - 나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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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런 거지 So it goes

극영화|컬러|DCP|76분|2024

  • 1시놉시스
    머물 곳 없는 어느 부부는 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살인을 한다.
  • 1프로그램 노트
    영화란 게 뭐 겨우 이런 거지. <뭐 그런 거지>는 일부러, 감독 자신에 상황에 맞춰, 의도적으로 영화의 가치를 격하한다. 여기서 격하란 부정의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거대한 틀에 묶여 자신의 정체를 잃어버린 영화 매체의 현재를 적절한 위치에 옮겨 놓으려는 착한 조정에 가깝다. 영화의 모든 요소는 최대한으로 경량화되어 샅샅이 흩뿌려져 있다. 로드 무비의 형식 아래 한 남녀가 자경단 역할을 자청하며 나쁜 사람들을 붙잡아 처벌하는데 알고 보니 남녀는 우주 바깥에서 온 외계인이고··· 아무튼 뭐 그렇다. 어떠한 맥락을 붙잡을 수 없는 이야기와 장르의 산개를 휘어잡는 힘은 이하람 감독이 전작 <기행>, <흙으로 돌아가리라>에서 드러냈던 (실질적) 1인 제작 영화의 품질적인 균일함이다. 이 균일함은 명백히 로-파이하고 전혀 고급스럽지 않아 빈곤한 이미지, 사운드, 그리고 인물마다 극적으로 경직되고 과장되어 튀는 연기의 연속이다. 결국 영화란 것은 이런 일이다. 머릿속에 있는 온갖 이야기와 상상을 이렇게 저렇게라도 화면에 꺼내어 보여주는, 말 그대로의 순수한 창작이어야 한다. <뭐 그런 거지>는 작금 영화에 씌워진 겉치레를 벗어 던지고 한 작가의 나체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낭만의 표면이다.(이우빈)

<기행> (2022) 
<흙으로 돌아가리라>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