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트럼 부산 리와인드

스펙트럼 부산 - 리와인드 

유상곤 감독 특별전

<표류>(1996)
<길목>(1997)
<체온>(1998)
<이른 여름, 슈퍼맨>(2001)

상영일정

  • 111.22 (금) 15:30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 211.23 (토) 16:30 영화의전당 소극장(시네토크)
이미지 없음

표류 The Drift

극영화|컬러 | DCP|9분|1996년

  • 1시놉시스
    한 남자가 망망대해의 위태로운 뗏목 위에 표류하고 있다. 그런 그의 곁을 또 다른 표류자와 기관배가 스쳐가 버리고, 그는 서서히 반복되는 절망에 익숙해진다. 막상 그의 곁으로 빈사상태의 늙은이가 떠내려오자 외면한 채 자신의 뗏목으로부터 슬그머니 밀어내고 그는 또다시 홀로 표류한다.
  • 1프로그램노트
    삶이란 세상을 표류하는 일일 것이다. 얼마간의 의지와 우연, 혹은 운명이라 불릴 만한 것들을 따라 흘러가니 내 것이어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이 문장이 사족인 것만 같아 머뭇거려질만큼 <표류>는 명료한 은유의 영화다. 이후에도 유상곤이 지속적으로 다루어온 고독, 유폐, 단절의 형상을 한 인간관계의 원형으로 보이기도 한다. 또한 현재의 관객으로 접할 수 있는 그의 시작이자 1990년대 부산독립영화를 주목하게 한 작품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망망대해 위로 쏟아지는 직사광선을 피할 도리도 없고 돛도 닻도 없이 가랑잎처럼 떠 있는 뗏목이란 얼마나 연약하고 불안한 존재인가. 그 근처를 스쳐 가는 이들이 있다. 세상사 그러하듯 바다를 떠다닌다는 점에서 그들 모두가 같은 상황이지만 저마다 사정이 다르다. 누군가는 위험천만한 튜브 하나 달랑 끼고도 유유자적하는데 누군가는 선박에 몸을 싣고 지나가면서 이 표류자를 도와줄 의향이 없다. 단출한 구성만으로도 우리 삶의 일부를 탁월하게 그려내는 그의 미덕은 시간 앞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다.(김지연)
이미지 없음

길목 Way Entrance

극영화|컬러|DCP|18분|1997

  • 1시놉시스
    한적한 어촌의 겨울밤, 철길 건널목 허름한 가게 앞에서 젊은 여자가 신호음만 들려오는 수화기를 들고 있다. 그녀가 가자 가게 안의 늙은 여자가 나와 전화를 떼 내어 들어간다. 가게의 불이 꺼진다. 가게 주위에서 일어나는 늙은 여자의 일상. 한복집 재봉틀 앞에서 일하는 젊은 여자의 일상. 퇴근길 젊은 여자는 가게 앞을 지나가다 전화를 건다. 여전히 신호음만 들려 온다. 밤늦은 기차가 지나가고 가게를 나온 늙은 여자가 전화를 떼 내어 가게로 들어간다. 가게 불이 꺼진다.
  • 1프로그램 노트
    유상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 일상을 스크린에 옮겨온다. 거기엔 삶의 골수로부터 채취한 농밀한 감정이 배어 나와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말 없고 무표정한 인물들은 오늘도 우리가 거리에서 스친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처럼 평범하다. 어렵지 않게 파악되는 두 인물의 단조로운 삶은 철길 앞 슈퍼마켓에서 교차한다. 영화의 줄거리는 시놉시스에 있는 단순한 내용이 전부다. 하지만 그걸 이 영화의 전부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디제시스 공간의 정적은 그들의 내면과 같고, 짐짓 거리를 둔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세심한 관찰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영화가 관객을 데려다 주는 곳은 어디인가. 겨울, 사위는 이미 어둡고 슈퍼마켓의 작은 불빛마저 꺼진 뒤 완전히 어둠에 잠기는 세상을 목격할 때, 그 순간 가슴속에 밀려드는 감정을 무엇이라 부르면 좋을까. 고독, 스산함, 외로움, 슬픔, 아픔. 그런데도 기다리거나 견뎌내는 마음의 담담함, 그리고 어느 정도의 체념에 관하여.(김지연)
이미지 없음

체온 The Body Tamperature

극영화|컬러|DCP|8분|1998

  • 1시놉시스
    노인은 정신나간 딸을 오토바이에 태운 채 한적한 길을 달린다. 갑작스레 소낙비가 내리고 그들은 운동장 옆 처마에서 비를 피한다. 노인은 딸의 젖은 머리를 닦고, 물을 먹여주고는 돌아서서 비 오는 운동장을 바라보며 깊은 회한에 젖는다.
  • 1프로그램 노트
    이미지도 말을 한다. 유상곤은 그걸 안다. 그는 특정한 스타일에 갇히고 싶지 않았던 것 같지만 이미지의 연쇄로 추동하며 영화를 영화이게 만드는 그의 작업은 비평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군더더기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간결한 형식 안에는 삶의 보편성이 높은 밀도로 응결돼 있다. 다시 말해 관객은 이들 부녀가 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삶이 녹록하지 않을 것을 안다. 우리는 노인이 헬멧을 쓰지 않은 이유를 알 순 없어도 그가 딸을 지극하게 돌본다는 사실을 모를 수 없다. 건조한 관조자의 시선으로 생의 고단함, 슬픔, 연민을 응시하는 영화 앞에서 감정의 파고에 휩싸이는 건 관객이 된다는 말이다.(김지연)
이미지 없음

이른 여름, 슈퍼맨 Superman in Early Summer

극영화|컬러|DCP|14분|2001

  • 1시놉시스
    이른 여름 아침, 버스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던 소녀는 밀짚모자를 쓴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따라오는 것을 눈여겨 본다. 버스 안의 승객들이 모두 잠이 든 순간, 소녀는 예의 그 아저씨가 하늘을 나는 슈퍼맨이 되어 나타나는 환상을 경험한다.
  • 1프로그램 노트
    이 작품은 일면 유상곤의 일탈처럼 보인다. 생이 고독하거나 고단하지 않은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삼고 판타지를 끌어들여 그의 영화이력에서 확실히 다른 접근이다. 그렇지만 삶의 범주 안에 생성되는 순간들을 포획해 어떤 인상과 정서를 전할 때에도, 유상곤은 기꺼이 특정 시간 혹은 사건을 늘리거나 생략하며 그 와중에 사실성을 종종 무시했다. 그러니 어쩌면 그의 선택에 놀라지 않은 이들도 있었을지 모른다. 어느 쪽이든 <이른 여름, 슈퍼맨>이 예쁜 동화가 되려고 시도한다는 데엔 동의할 것이다. 동그란 눈을 한 어린이 주인공을 귀여워하지 않을 도리가 없고, 아빠에게 가는 버스에서 슈퍼맨을 만난다는 영화의 발상은 천진하다. 무성영화 시대의 슬랩스틱이 소환되고 아기자기한 판타지 장면들이 펼쳐진다. 그렇게 영화는 그늘 한 점 없이 밝다. 순간에 지나지 않더라도 그런 것들이 위로가 되는 때가 있다.(김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