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놉시스 오후 두 시경 공원에서 한 여자가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한편, 새 한 마리가 나무에 앉고, 구름은 해를 가리고, 고양이는 세수하고, 물레방아는 돌고, 비둘기들은 보도에 앉아 쉬고, 남자는 뜰의 구석에서 서성이고, 나비는 꽃에서 꽃으로 날고, 분수는 솟구치고, 잉어 몇 마리 연못 속에서 헤엄치고, 개미들은 제 할 일에 바쁘다.
1프로그램 노트 단편 <산책>(2017)과 <서울의 겨울>(2018), 장편 <오후 풍경>(2020)과 <밤 산책>(2022)을 선보였던 손구용의 다섯 번째 작품이자, 세 번째 장편 <공원에서>(2024)는 기울어진 감각을 지탱하는 것이 영화 내부에 존재하지 않음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작품이다. 영화에서 기울어진 감각을 형상화하는 존재는 카메라가 잘라낸 풍경과 풍경 사이, 순환을 발견하기 위해 이 작품의 외관에 부딪히길 반복하는 관객들의 눈과 눈 사이를 비켜선 채 흐른다. 단조로운 시, 공간이 오규원 『뜰의 호흡』 속 활자를 만나 선형적인 영화의 관성을 길들이고, 무한히 수렴할 것만 같은 수평의 감각을 획득하는 것으로 이 작품을 요약하거나, 그것을 일련의 성취라고 말하기엔 쓰러지지 않은 채 기울어진 상태를 줄곧 유지하는 장면들에 지워지지 않는 묘연함이 머문다. 하늘과 대지, 인물과 장소, 빛과 어둠, 영화와 시라는 구분된 요소 사이가 아닌 경계에서 이 기울어짐이 종적을 감춘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묘연함이다. “시가 도둑맞은 요소는 영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며, 영화는 시에서 그 무엇도 훔쳐내지 못했다.”라는 어긋난 표현처럼, 이리저리 보아도 기울어진 감각이 유지될 뿐이다. 외부의 것을 영화로 끌어들여 의미로 결합하며 균형을 되찾는 것은 결국 영화 본래의 성질을 잃어버리게 만들 뿐이다. 평형추를 찾는 일을 멈추면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보게 된다.(오민욱)
1시놉시스 아파트 분양 사기를 당한 후 웅비는 아침잠이 많아졌다. 은빈이 속한 극단의 연습실은 건물주로부터 퇴거 명령을 받는다. 철거 예정일은 내일이다. 시간이 흐르지 않거나, 같은 일이 영원히 반복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 두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붙지 않으면서 서로를 향해 되돌아온다. 이 영화는 불완전한 목격자의 눈에 비친 세계고, 과거의 흔적 위에 겹쳐 쓴 일기장이다.
1프로그램 노트 영화의 1부는 웅비라는 사람이 아파트 분양 사기를 당하여 느낀 다소간의 충격을 며칠의 일상과 상담과 우정과 공동 창작으로 사뿐히 지르밟는 보편적 익명들의 일기다. 2부는 은빈이란 사람이 2006년 대추리 사태로 명명된 정부의 농민 탄압 건을 알게 되며 뒤늦게 그 역사의 파장에 휘말려 드는 신묘한 지각의 일대기다. 그렇게 일기와 일대기,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미시와 거시, 익명과 기명, 일상과 사건의 덩어리를 <나선의 연대기>는 조심스레 자르고 느슨하게나마 이어 붙이려 한다.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시청각적 도전과 과학적 실험과 미학적 탐구와 매체적 혼재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호명할 때 되려 힘을 잃을 것이다. <나선의 연대기>가 화면의 구체성에 대한 설명적 내러티브와 고전적 데쿠파주를 포기하고 손에 쥐려는 바는 영화적 형식과 그렇지 않은 형태들이 나선적으로 엮이는 기괴한 양태의 주물 과정 자체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그 연대기의 물리적 형성을 위해 영화란 표면 위로 연극, 글쓰기, 광학 시험, 퍼포먼스 등의 비(非)영화적인 가능성을 배치하고 그 틈을 빙빙 순환하며 산뜻한 긴장감을 퍼뜨린다. 영화라는 자의 옷깃을 붙잡는 동시에 그를 바깥으로 밀어내려 하는 모순적 애증에 빠져있는 것처럼, 부드럽되 한없이 대찬 이 작품의 오감과 마음이야말로 직접 체득하지 않고서야 알기 힘들 귀한 사랑의 감각이다.(이우빈)
1시놉시스 원주에 60년 된 단관극장이 있다. 극장 주위엔 극장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극장을 부수려는 원주시장이 있다. 아카데미극장은 과연 어떻게 될까. 한때 아카데미극장밖에 모르던 세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1프로그램 노트 <무너지지 않는다>는 원주 아카데미극장을 제각기 방식으로 기억하는 김귀민, 이미현, 최은지, 세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1963년 개관한 단관 극장으로,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원주 시민들을 비롯한 다양한 세대의 지역민들이 문화생활을 누리고 일상을 나누게 해준 회억의 공간이었다. 이곳은 주민들에겐 오가는 일과 중 항상 지나쳐야 했던 일상 속 영역이었고, 누군가에겐 처음으로 영화를 봤던 기념비적 무대였다. 또 다른 이에겐 북적이는 관객들 틈에서 온정을 느꼈던 추억의 장소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무궁무진한 사연을 품은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원주시의 강행으로 2023년 말에 철거됐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극장 철거는 분명 시민들의 동의 없이 독단적으로 이뤄졌지만, 시장은 “아카데미극장 부지를 도심 속 휴식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조성해 시민의 품으로 돌려드리겠다”라는 위선적인 말만 남길 뿐이었다. 지역민들은 소중한 옛 공간의 철거를 막으려고 갖은 힘을 다해 애썼다. 원주 아카데미극장이 무너진 뒤에도 그들은 여전히 목소리를 내며 싸우고 있다. 뭔가를 지켜내려는 불굴의 정신은 영원히 남아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영화를 통해 무너졌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은 마음을 확인하는 바이다.(윤지혜)